• 최종편집 2024-05-10(금)
 
 

샛노란 씀바귀 꽃이 소금 흩뿌리듯 지천에 펼쳐져 있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신록의 나무들이 일렁인다.

사람의 흔적이 닿지 않은 자연은 세월의 옷을 입고 거대하고 울창한 초록물결이 되었다.

눈 앞의 철조망만 아니면 한적하고 평범한 농촌 마을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DMZ 평화의길' 철원 구간이 지난 6 1일 개방했다.

판문점선언 1주년을 맞아 지난 4 27일 개방한 고성 구간에 이은 두 번째 평화의 길이다.

한국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백마고지와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 DMZ) 안쪽의 화살머리고지까지 둘러볼 수 있는 구간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고성 구간은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추진철책선 통문 앞까지만 갔으나 철원 구간은 철책선의 통문(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공식적인 통로)을 열고 비무장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남북 분단 이후 처음으로 비무장지대 내부가 일반 국민에게 공개되는 것이다.

'철원 DMZ 평화의길' 출발 지점은 백마고지 전적지다.

1952 10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간 한국군 9사단과 중국군 제38 3개 사단은 이 고지를 두고 쟁탈전을 벌였다.

쏟아진 포탄만 28만발. 목숨을 잃거나 다친 국군이 3500여명, 중국군은 1만여명에 달했다. 뺏고 뺏기는 고지전에서 땅의 주인도 24차례나 바뀌었다.

백마고지 이름의 유래도 전투와 관련이 깊다.

무차별 포격으로 나무가 모두 쓰러지고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백마가 누워 있는 것처럼 보여 백마고지라 이름 붙였다는 것이다.

사실, 전적지가 있는 곳이 백마고지는 아니다.

백마고지는 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해 있어 지금도 일반인의 접근은 엄격히 통제된다.

대신 남한에서 가장 북쪽, 백마고지가 잘 보이면서도 일반 국민의 출입이 가능한 곳에 전적지를 조성했다.

야트막한 언덕의 백마고지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를 지나면 '철원 DMZ 평화의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탐방에는 해설사 1명과 참가자들의 안전을 도와줄 셰르파 2, 군인이 동행한다.

자물쇠로 굳게 닫혔던 철문이 열리고 출입증을 지닌 지역 농민들만이 농사를 짓기 위해 출퇴근하는 공간으로 들어선다. 비무장지대는 아니지만 이 역시 처음있는 일이다.

조금 더 북쪽, 남방한계선 가까이 올라간다. 1.5km 구간인 백마고지 조망대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했다.

조망대에 서자 손에 닿을 듯 말 듯 백마고지가 가까이 다가온다. 철책선 너머로는 역곡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구불구불 흐르는 물줄기 만큼은 남과 북의 경계도 모른 채 이어진다. 이곳부터 다시 3.5.km 공작새능선 조망대까지는 도보구간이다.

머릿속으로 그렸던 그림은 철조망을 손으로 만져보며 걷는 것이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도보구간은 철책선에서 5~20m 정도 떨어진 군사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다. 길은 여느 평범한 시골길과 다르지 않다.

주변으로는 출입허가를 받은 농민들이 드나들며 농사를 짓는 논도 있다. 그와 동시에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는 초소 등 군사시설이 또한 곳곳에 있어 비무장지대의 공존하는 평화와 긴장을 느낄 수 있다.

차를 타고 다시 1.3km 이동해 세 번째 통문에 다다랐다. 이번 통문이 열리면 비무장지대와 화살머리고지,

통문에서 철원GP까지는 1.4km. 제법 가파른 경사의 오르막길을 달려 이번 평화의길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최종 목적지 철원GP(Guard Post, 경계초소)에 도착했다.

철원GP는 비상주 GP. GP는 병력 상주 여부에 따라 상주 GP와 비상주 GP로 구분하는데 비상주 GP는 병력이 상주하지는 않지만 상황이 발생하면 지체없이 출동하는 곳이다.

한국전쟁 막바지, 정전협정과 군사분계선 확정을 앞두고 펼쳐진 전투는 이후 출입마저 자유롭지 못하게 되면서 유해 수습도 이뤄지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뒤늦게나마 이름없이 죽어간 꽃다운 청춘들의 유해가 수습되고 있다.

철원 구간은 주 5(·목요일 휴무), 하루 두 번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운영하며 각 회당 참가인원은 20명이다.

날씨에 따른 모자나 선글라스, 생수, 비옷, 우산 등은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언제 봄이었냐 싶게 어느새 여름의 문턱에 계절이 서 있다. 이렇듯 봄과 여름, 계절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럽지만 '철원 DMZ 평화의길'을 걷는 것은 그렇지 못했다.

그저 만들어진 길을 걷는 것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길을 걷는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하기까지한 그 일이 가까운 미래에는 계절의 변화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 변화의 과정은 이제 시작이다.
<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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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머리고지에 서다…철원 DMZ 평화의길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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